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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멍 때릴 때, 뇌는 더 활발하게 일한다? – 기본모드네트워크의 비밀

by 알고하루 2025. 4. 24.

멍하니 있을 때, 뇌는 쉬고 있는 걸까요?

“요즘 따라 자주 멍 때리는 것 같아.” 혹시 이런 말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또는 누군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있으실 겁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 샤워를 하던 중, 또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뇌가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말 그대로 ‘머리를 비우는’ 순간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은 이러한 인식에 대해 전혀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뇌는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오히려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집중하거나 문제를 풀 때보다 더 많은 영역이 활성화되며, 이때 작동하는 뇌 회로는 ‘기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이하 DMN)’라고 불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기본모드네트워크가 무엇이며, 멍 때리는 시간 동안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본모드네트워크란?

기본모드네트워크는 외부 자극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회로를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때, 혹은 마음이 떠돌고 있을 때에 이 회로는 더 활발히 작동합니다. 이는 뇌가 단순히 에너지를 절약하거나 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 대한 생각, 감정의 정리, 과거 회상, 미래 계획과 같은 내면적인 정신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본모드네트워크는 뇌의 여러 영역, 특히 내측 전전두피질, 후방 대상회, 그리고 해마 주변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들 부위는 자아 성찰, 사회적 판단, 기억 처리 등에 관여합니다. 즉, 멍하니 있을 때 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감정을 재구성하며, 일종의 ‘내면 정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언제 이 회로가 활발해질까?

기본모드네트워크는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활성화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산책을 할 때, 창밖을 바라볼 때, 샤워를 하면서 생각이 떠돌 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변에 특별한 자극이 없고,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멍 때리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때 뇌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떠올립니다. 실제로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집중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DMN의 활동이 억제되지만, 과제가 끝난 직후나 휴식 시간에는 다시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즉, 뇌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사라질 때 자신의 내부 세계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창의성의 원천

기본모드네트워크는 단순한 기억 회상이나 감정 정리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에서 갑자기 떠오르기보다는, 기존의 기억과 경험이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되면서 생겨납니다. 이 과정이 바로 DMN의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작가나 예술가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또는 과학자들이 문제 해결의 단서를 발견하는 순간에도 이 회로가 크게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생각들이, 결국 창의적인 발상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감정과의 연결성

기본모드네트워크는 자아에 대한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자기반성이나 감정 되새김 같은 심리 활동이 이루어질 때 이 회로가 활성화됩니다. 이는 정신건강과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DMN의 활동이 지나치게 강할 경우,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반복적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약할 경우에는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회로의 균형 잡힌 활동은 건강한 자아 인식과 정서 안정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의 영향

현대 사회는 스마트폰, SNS, 다양한 콘텐츠로 인해 끊임없는 자극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본모드네트워크가 활성화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뇌가 ‘멍 때릴 틈’ 없이 계속해서 외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서, 오히려 생각이 정리되지 않거나 감정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하루 중 일부 시간이라도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눈을 감고 쉬는 시간은 DMN을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는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뇌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 속 적용 방법

기본모드네트워크의 작동을 일상에서 잘 활용하려면, 의식적인 ‘멍 때리기’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꼭 명상이나 특별한 연습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몇 분이라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생각을 흘려보내는 시간만으로도 뇌는 스스로 정리되고 창의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기 전, 밤에 잠들기 전, 또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 중인 시간은 이 회로를 활성화하기에 좋은 순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뇌가 가장 바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멍 때릴 때, 뇌는 더 활발하게 일한다? – 기본모드네트워크의 비밀

멍 때림의 재발견

‘멍 때리는 시간’은 더 이상 게으른 시간이나 비효율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뇌는 그 시간 동안 자아를 성찰하고, 감정을 정리하며, 창의적인 연결을 시도합니다. 기본모드네트워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핵심 회로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씩 멍 때리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생각보다 많은 통찰과 회복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