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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거짓말 탐지기보다 더 똑똑한 뇌: 뇌는 언제, 어떻게 거짓말을 할까?

by fairbreak 2025. 4. 6.

"거짓말하지 마."
이 말,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봤거나 들었을 겁니다. 거짓말은 나쁘다고 배우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하루에 평균 10~200번까지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한다고 해요.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누군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작은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할까요? 그리고 그 순간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오늘은 거짓말이라는 인간 고유의 행동을, 뇌과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거짓말은 뇌의 고급 전략이다

거짓말은 단순히 말의 왜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한 인지 조작이며, 뇌의 고등 기능이 총동원되는 '전략적 행동'입니다. 특히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조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이 영역은 우리가 "계획하고, 판단하고, 제어하는" 사고의 중심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부위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가 “보고서 어제 끝냈지?”라고 물을 때, 아직 안 했지만 “네, 거의 다 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전전두엽이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한 결과입니다. 동시에 해마는 사실(보고서가 미완성임)을 기억하고 있으며, 편도체는 들킬까 봐 불안감을 조절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거짓말을 위해선 기억, 판단, 감정 조절, 말과 행동의 표현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뇌에 이상이 있거나 발달 중인 아동의 경우, 이 과정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직하게 말하거나 거짓말이 서툴죠. 뇌과학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뇌 손상 환자의 인지 기능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거짓말을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심리학자 로버트 펠드먼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낯선 사람과 10분 동안 대화한 참가자들을 영상으로 분석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균 2~3번 거짓말을 했다고 해요. 놀라운 건, 자신이 거짓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거짓말의 정의’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기나 조작만을 거짓말로 생각하지만, "괜찮아", "나 그 영화 봤어", "다 이해했어" 같은 작은 과장이나 무의식적 포장도 뇌과학적으로는 거짓말로 분류됩니다.

뇌는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고,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이러한 거짓을 자동적으로 수행합니다.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해 '사회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결국 거짓말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악의적인 행동이라기보다, 생존과 적응을 위한 전략에 가깝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보다 더 똑똑한 뇌: 뇌는 언제, 어떻게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다

거짓말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뇌는 그 동기와 맥락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 보호형 거짓말입니다. 실수나 잘못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죠. 예를 들어 시험 망친 걸 부모님께 "그럭저럭 봤어"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뇌는 편도체가 활발히 반응하며,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 신호를 보냅니다. 동시에 전전두엽은 그럴듯한 이유나 설명을 만드는 데 집중하죠.

둘째, 타인을 위한 거짓말, 즉 '흰 거짓말(white lie)'입니다. “너 오늘 되게 멋져 보여!” 같은 말이죠. 이때는 감정 공감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며, 불안 반응은 적습니다. 오히려 친밀감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유도하죠.

셋째, 이득 추구형 거짓말입니다. 이건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로, 거짓말을 통해 금전, 권력, 명예 등의 이득을 추구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전전두엽과 보상회로(도파민 경로)가 강하게 반응하며, 반복적으로 할수록 죄책감 관련 반응(편도체 활동)은 둔감해집니다. 거짓말이 습관이 되면 뇌가 ‘덜 미안하게’ 바뀐다는 뜻이죠.

 

거짓말 탐지기는 뇌를 못 따라잡는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거짓말 탐지기’ 장면이 나오죠. 흔히 말하는 폴리그래프(polygraph)는 심박수, 땀 분비, 호흡 변화 등을 측정해 거짓말을 탐지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뇌 자체를 읽는 것이 아니라,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우회적으로 관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진실을 말해도 긴장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은 ‘거짓말’로 오인될 수 있죠. 숙련된 사기꾼이나 사이코패스는 편도체의 활동이 낮아 스트레스 반응이 적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를 쉽게 통과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를 활용해 거짓말 중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직접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100% 신뢰할 수 있는 ‘뇌 기반 거짓말 판별 기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뇌는 그만큼 복잡하고, 개인차도 크기 때문이죠.

 

진실을 말하는 뇌 vs 거짓을 말하는 뇌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 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미국의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거짓말을 할 때 뇌는 진실을 말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특히 전전두엽, 대상피질, 측두엽 등 다양한 인지영역이 함께 활성화된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거짓말을 하려면 사실을 기억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바꾸고, 감정을 억제하고, 신체 언어까지 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진실은 자동적으로 나오지만, 거짓은 뇌가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결과인 셈이죠.

그래서 거짓말을 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표정과 말이 어긋나는 ‘비언어적 단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훈련된 사람은 이를 숨길 수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뇌의 부담 때문에 완벽한 거짓말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거짓말하는 뇌를 이해한다는 것

거짓말은 인간만이 가진 복잡한 뇌 구조에서 비롯된 능력입니다.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생존, 사회성, 감정 조절까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전략이죠. 하지만 반복되는 거짓말은 뇌의 회로를 바꾸고, 결국 자기기만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정직한 태도입니다. 자기감정을 왜곡하지 않고 인식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 훈련이나, 일기 쓰기 같은 활동은 뇌의 자각 회로를 강화하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거짓말은 뇌의 능력이지만, 진실함은 뇌의 성숙함입니다. 우리는 거짓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선택도 할 수 있죠. 지금 당신의 뇌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